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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벗출판사와 진행 중인 책의 일부 내용을 발췌해 소개드립니다. 한국에서 현 시점에 성공적으로 사업이 운영되고 있는 15개 정도의 사이트에 대한 소개와 과거 그리고 현황을 분석하고 해당 사이트의 책임자와 인터뷰한 내용을 수록한 책입니다. 아마 빠르면 5월 중에는 세상에 소개될 수 있을 듯 싶습니다. 새로운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현재의 문제점을 진단하기보다는 현황을 분석하는 차원의 책이며, 독자들의 반응이 좋다면 다음 번에는 새로운 비즈니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책을 준비해보고 싶네요. 샘플로 올린 자료 참고해보세요. ^^
1.1. 규모의 경쟁에서 성공해 사용자수에 매출이 비례하는 포탈 사이트 포탈은 관문을 뜻하는 단어로서 인터넷의 첫 시작을 열어주는 사이트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한국의 포탈 사이트는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이 대표하고 있으며 이들은 연간 매출이 수천억원에 이를 정도로 큰 성장을 했다. 이들 포탈에는 하루에만 약 1천300만명의 사용자가 방문한다. 대한민국 인구의 30%가 하루에 한 번 이상을 포탈에 방문하고 있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하루에 1000만명 이상이 모일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포탈은 규모의 경제에서 성공함으로써 다양한 사업으로의 연계에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네이버와 다음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포탈은 원조 포탈인 미국과는 다른 모양새로 발전했다. 규모의 경제에서 성공한 한국의 포탈 사이트가 보여준 주수익 모델과 성장 과정과 비결을 살펴본다. 1.1.1. 충분한 사용자가 모일 때까지 기다려라. 멧칼프의 법칙은 컴퓨터 네트워크 망의 성장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가치도 증대하는 것을 지칭하는 법칙이다. 포탈 사이트의 성공 비결은 멧칼프의 법칙에서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말 지금의 포탈이라 불리던 사이트들은 무료 전자우편과 인터넷의 주요 사이트들을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카타고리 서비스, 정보검색 등을 통해서 사용자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2000년초까지만 해도 충분한 사용자가 확보되지 못한 이들 포탈은 이렇다할 수익모델을 찾지 못한채 방황했지만 일 1000만명 이상의 사용자가 방문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검색으로 한국을 위협한 야후와 라이코스 1969년 인터넷이 시작된 이래 1990년 초반까지만 해도 소수의 전문가 그룹만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1993년 하이퍼링크와 마우스만을 이용해 쉽게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는 WWW이 점차 대중에게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인터넷은 일반 대중에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1993년에만 해도 WWW 서버수는 130개에 불과했지만 2004년말에는 총 홈페이지수가 4426만개로 11년만에 34만배로 증가했다. 이렇게 WWW이 대중화될 수 있었던 것은 1994년 등장한 넷스케이프라는 웹브라우저 덕분이었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덕분에 1995년부터 WWW 사용자는 갑자기 늘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홈페이지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홈페이지가 늘어가면서 사용자들은 방대한 홈페이지에서 무엇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곤란을 겪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를 카타고리로 분류해주는 사이트였다. 대표적인 사이트가 야후라는 홈페이지이다. 야후는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의 분야별로 주요 인터넷 사이트를 분류해서 제공했다. 이러한 것을 가리켜 옐로우 페이지라고 부른다. 망망대해 바다에서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등대처럼 옐로우 페이지는 길을 헤매는 네티즌들을 모으게 했다. 1994년에 전기공학 박사과정 중인 두 명의 학생에 의해 시작된 야후는 주요 인터넷 사이트를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옐로우 페이지를 제공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야후의 홈페이지에는 New, Cool이라는 메뉴가 있으며 New에서는 최근에 야후에 등록된 사이트, Cool에는 야후가 추천하는 사이트가 하이퍼링크로로 제공된다. 그 외에도 각 분야별로 체계적으로 사이트를 정리해 분류했다. 이러한 방식의 옐로우 페이지는 인포시크, 라이코스 등에서도 제공되었다. 인포시크는 유료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던 사이트로 Big Yellow를 통해서 1600만개의 미국 회사의 주소와 전자우편 주소, 전화번호 등을 제공했다. 또한, 해외 각 나라의 인터넷 사이트를 분류별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해외 서비스를 벤치마킹한 사이트가 있었다. 1996년 1월 시작된 까치네라는 사이트는 처음 시작될 때에는 검색 서비스만 제공했지만 96년 10월에는 분류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까치네의 로봇에이전트가 자동으로 수집한 데이터와 사용자들의 참여에 의해 축적된 자료를 모아서 인터넷 사이트를 분류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또한 한메타자교사로 유명한 한메소프트에서도 ZOOM이라는 사이트를 통해서 인터넷 사이트를 분류해서 메뉴별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또한, 1997년 3월에는 디렉토리 서비스인 ZIP!이 출시되었다. ZIP!(www.zip.org) 서비스는 지금도 운영이 되고 있으며 디렉토리별로 주요 인터넷 사이트를 체계적으로 분류해서 제공하고 있다. 이같은 옐로우 페이지는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하는 네티즌의 발길을 묶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들 사이트에서는 검색 기능을 통해서 디렉토리로 분류한 각각의 인터넷 사이트를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디렉토리에 등록되지 않은 사이트들은 검색 범주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하루에 수천, 수만건씩 새로 탄생되는 인터넷 사이트들에 대한 정보를 찾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때 인터넷 상의 수많은 페이지를 대상으로 정보를 검색해주는 전문 검색엔진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바로 1995년 12월에 시작된 알타비스타와 1996년 알고리즘 웹 검색 기술을 전문으로 등장한 잉크토미가 주목받았다. 이러한 검색엔진들은 디렉토리에 등록된 사이트 외에 수많은 WWW 페이지들을 검색 범주로 포함함으로써 원하는 정보를 찾아주었다. 특히 알타비스타의 경우에는 1990년 후반기에 경쟁 검색엔진들보다 약 10여배 많은 2000만 페이지 이상을 검색 결과에 포함시키면서 양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게다가 정확도나 속도, 디자인의 간결성이 우수해 1990년대에는 2000년대의 구글처럼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이들 검색 서비스는 야후와 라이코스 등의 포탈 전략에 무너지고 말았다. 비록 전문 검색엔진인 알타비스타와 잉크토미처럼 강력한 검색 기능과 성능을 제공하지 못했지만 야후는 검색 외에 메일, 커뮤니티, 개인 홈페이지 등의 다양한 웹 서비스를 백화점 방식으로 토탈(Total) 제공하면서 사용자를 확보했던 것이다. 이같은 전략탓에 알타비스타, 잉크토미와 같은 전문 검색 기술력을 갖춘 사이트들은 앞선 검색 서비스 제공과 뛰어난 검색 기술에도 불과하고 다른 기업에 인수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야후와 라이코스는 1990대 중반부터 분류와 검색을 기반으로 사용자를 확대하면서 메일, 커뮤니티 등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렇게 포탈 사이트는 사용자수의 제곱에 비례해 그 효용성의 가치가 커지게 된다. 그렇다보니 초기의 포탈 사이트는 보다 많은 사용자를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웹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했던 것이다. ◈ 쉬어가는 페이지 : 뛰어난 기술 뒤에는 마케팅과 전략이 필수! 2006년 세계적으로 두각을 보이고 있는 사이트는 구글이며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최고의 포탈 사이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모두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미 10여년 전에 뛰어난 기술력으로 시장을 주도했던 전문 검색 사이트는 이 두 사이트가 아닌 잉크토미와 알타비스타라는 곳이었다. 잉크토미는 2002년 12월23일에 야후에 2억3500만 달러에 인수되었고, 알타비스타는 몇번의 주인이 바뀐 끝에 2003년 2월에 인터넷 검색 서비스 업체인 오버추어에 1억4000만 달러로 매각되었다. 최초의 검색엔진을 개발한 알타비스타는 98년 컴팩컴퓨터가 인수했다가 99년 CMGI에 매각되었다. 알타비스타는 99년에만 해도 30억달러의 시장 가치로 평가될만큼 1990년대의 구글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주인이 바뀌면서 회사의 비전이 흔들렸고 그러면서 검색 → 포탈 → 검색 등으로 비즈니스 도메인이 변경되면서 시장 장악에 실패했다. 이같은 이유로 알타비스타는 2000년 초에 약 5백여명의 직원을 해고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흔히 인터넷 기업은 뛰어난 기술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기술 만능 주의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로 인터넷 사업도 뛰어난 기술에 의한 상품과 서비스만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특히나 인터넷 사업이 성장기를 넘어서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은 기술 이전에 10년 아니 5년을 내다볼 수 있는 사업 전략과 만들어진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마케팅이 필수적이다. 2002년 10월 지식iN이 오픈하면서 네이버는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해 2004년 6월부터 포탈 분야 1위(랭키닷컴 자료)를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네이버는 지식검색을 오픈하며 TV, 영화, 신문 등의 매스미디어를 통한 다각적인 광고를 펼쳤으며 이를 통해 지식검색을 대중적 트렌드화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인터넷 사업은 기술력과 전략, 마케팅의 3박자가 어울어져야만 사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 메일과 카페로 포탈의 반열에 들어간 다음 1997년 9월1일 야후는 한국에 야후 코리아를 설립하며 한국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서비스하기 시작한 개인 홈페이지, 메일, 검색 등의 서비스를 한국에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한국 사용자들을 매료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한국의 토종 포탈 사이트들은 검색에 기반한 야후에 밀려 포탈 시장을 외국계 기업에 빼앗겼다. 1999년 7월 서비스를 시작한 라이코스코리아 역시 초기부터 검색을 기반으로 야후, 다음에 이어 포탈 순위 3위 자리를 고수하며 네이버를 거뜬히 앞서며 다음을 위협했다. 하지만 2000년 상반기부터 상황은 역전하기 시작했다. 다음이 야후를 제치고 1위에 등극했고 이어서 2001년 4월부터는 네이버가 라이코스코리아를 앞서 야후를 바짝 추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의 성공 비결은 메일과 카페 서비스 덕분이다. 97년 5월 오픈한 한메일넷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충성 고객이 늘기 시작했고 이들.... <자세한 사항은 위의 PDF 파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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